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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리뷰 - '노래로 고객 마음 잡았어오'(2010.3.4) 2010-04-06 naturaldetox 조회 :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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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가수 CEO 양미란 네츄럴디톡시 대표

“노래로 고객 마음 잡았어요”

2010년 03월 04일 15시 10분

“전문적인 성악가도 50대가 되면 성량이 딸려서(떨어져) 그만두게 된다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전성기인 것 같아요.

밀려드는 공연제의를 시간이 없어서 소화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팬들이 많이 찾아야 전성기 아닌가요. 게다가 목소리가 아직 쨍쨍한 것 보면 ‘아로마 향기’ 덕 좀 보는 것 같아요.(웃음)”

그녀가 성악가 꿈을 꾼 것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4대째 기독교 집안으로 유년시절부터 교회 성가대로 활동하던 양미란(50) 대표는 학창시절 교내외 노래대회에서 1등자리를 휩쓸고 다녔었다.

마침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해 보라는 권유를 받아 진로에 적지 않은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사정이 기울었던 것.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려면 우선 코르위붕겐(음정)과 콩코네(발성) 지도를 3개월 받아야 했다. 1970년대 당시 학원비가 무려 5000원에 이르렀다.

2000원 교통비가 없어 6km에 달하는 학교까지 걸어 다녔던 그녀로서는 상상 조차할 수 없던 큰 돈이었다.

음대의 꿈을 잠시 접었지만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선택한 곳이 국제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였다.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녀가 음악적 갈증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녀가 1989년 프랑스 화장품 사업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음악이 있어서다. 수입 화장품 CEO로 밤낮없이 시장을 누비면서도 시간을 내 성악 레슨을 받고 작은 무대에서 설 정도였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사업가다. 아예 사업 덩치를 더 키워 단순 화장품이 아닌 토종 아로마 제품을 선보이며 짝퉁이 판을 칠 정도로 이 분야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그녀는 국제신학교 음악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음대 교수(외래교수)이기도 하다.

꿈에 그리던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3차례(독창회) 올랐던 것을 비롯해 예술의 전당 공연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결국 성악가가 된 것은 순전히 음악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고 생각한다.


성대결절 그녀 아로마가 살려
지난 2월23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네츄럴디톡시 본사에서 그녀가 건넨 명함 속에는 ‘노래하는 CEO’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그녀의 사업가로서 열정이 궁금했다.

일단 CEO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1989년부터 프랑스 화장품 업체 한국 지사장으로 첫 도전장을 내밀고 나서 연봉이 1억이 넘을 정도로 잘나가던 그녀였다. 그런 양 대표가 아로마에 심취한 것도 성악이 계기기 됐다.

프랑스 본사에 비즈니스 겸 성악공부를 하러 갔다가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아로마테라피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 수입해서 팔 게 아니라 우리 토종 약초로 아로마 제품을 개발해 보고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실제로 그녀는 충북 음성 등 토종 약초 식물을 대량으로 생산해 5년 이상 숙성시킨 뒤 아로마 원료로 만들어 냈다. 주로 쓰는 약초가 구절초, 민들레, 오미자, 국화 등이다. 이를 통해 만들어낸 제품만 120종이 넘는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금은 대박상품으로 통하고 있는 ‘로즈 애프터’도 첫 출시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규모가 작다보니 회사를 알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노래하는 CEO로 조금씩 알려지면서 달라졌어요. ‘성악’ 한다고 하니 대화의 물꼬가 쉽게 트이면서 특히 해외 사업에서 비즈니스가 술술 풀리더라고요.”


여성질환 예방에 특효가 있는 이 상품을 홍보하려 내놓은 모토가 ‘팬티에 한방울’이었다. 2004년 론칭 당시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대박을 예감했다. ‘팬티에 한방울’이라는 모토를 유치하다고 심지어 화까지 내는 기자가 있었다. 하지만 양 대표는 유치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기자회견을 끝내고 포스터에 ‘팬티에 한방울’이라고 새겨 전국에 뿌렸다. 로즈애프터가 빅히트 상품이 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박이 화를 부르는 법. ‘로즈 애프터’ 모조품이 판치기 시작한 것이다. 매출 타격도 타격이지만 양 대표의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믿었던 직원들의 배신이었다. 치밀하게 준비해 가짜 상품으로 시장을 망쳐버린 것이다.

이런 고통의 시간 속에서 더 빠져 들었던 것이 성악이었다. 매출 타격으로 부도직전까지 몰려드는 위기 속에서도 음악은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성악 전공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한 것도, 오스트리아 등지로 날아가 유수의 성악가들에게 사사 받은 시기도 모두 사업이 가장 어려웠던 2004~2005년의 일이었다.

성악가로 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아로마 강의가 많았던 그녀에게 성대결절이라는 천정벽력이 불어 닥친 것이다. 노래는 커녕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아로마 요법으로 기사회생했다.

2005년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아 스칼라(오스트리아 국립음악원)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을 당시는 발병으로 고생했다. 바쁜 일정 와중에 7일 레슨을 14일 레슨으로 늘리며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 되었다. 마지막 공연에서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양 대표는 자신이 아로마 업체 사장이 아니었다면 치료가 불가능했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독을 없애주는 아로마 치료 덕을 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여전히 네츄럴디톡시 연구소를 가장 신뢰하고 믿는다. 신기술과 제품력으로 승부하면 시장에서 반드시 알아 줄 것이라는 확신이다.

사장실 바로 옆, 사장실 보다 더 큰 공간으로 만들어 둔 연구소장실을 봐도 그가 얼마만큼 연구개발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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